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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 조직과 권력, 인간관계와 권력, 거울이 된 범죄영화

by 카이로명장 2025.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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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 그중에서도 ‘조직 폭력배’와 ‘검경 유착’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날카롭게 조명한 범죄 드라마입니다. 최민식과 하정우라는 걸출한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와 함께, 조직과 권력이 얽힌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치열한 생존기가 현실감 있게 펼쳐집니다. 단순한 조직범죄 영화로 보기엔 사회 풍자의 색채가 강하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단면을 블랙코미디적으로 풀어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속 권력 구조, 인물 간의 심리전, 그리고 한국 사회가 겪었던 혼돈의 시대상을 중심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조직과 권력, 인간관계와 권력, 거울이 된 범죄영화

1. 1980년대 후반, 조직과 권력의 얽힘 속 현실

‘범죄와의 전쟁’은 1982년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함께 정치적 혼란이 공존하던 시기였습니다. 그 가운데 불법적인 경제 활동과 폭력 조직의 세력이 커졌고, 공직 사회는 그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주인공 최익현은 부산세관의 말단 공무원으로, 조직폭력배와의 우연한 인연을 통해 점차 권력과 돈의 세계로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영화 초반, 익현이 폭력 조직의 핵심 인물 최형배(하정우 분)와 인맥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은 우습고도 씁쓸하게 그려지며, 이 시대가 가진 ‘관계’ 중심의 생존 방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익현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대단한 비전이나 이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세상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전형적인 가장입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방식이었고, 시대의 혼란스러움은 그런 방식조차 용인하거나 묵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당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부패를 고발합니다. 고위 공직자, 검사, 정치인 등이 어떻게 폭력조직과 손을 잡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는지를 익현의 눈을 통해 보여줍니다. 감독 윤종빈은 이 시대를 매우 디테일하게 재현합니다. 복고적인 세트, 인물들의 억양과 말투, 당시 유행하던 음악과 소품까지도 철저히 고증되어 관객을 그 시대로 끌어들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인간 욕망의 끝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익현이 점점 더 권력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그는 조직폭력배와 공무원의 중간자적 위치에서 어떤 윤리적 기준도 없이 움직이게 되고, 결국은 자신도 ‘나쁜 놈들’ 중 하나로 변해갑니다. 그런 그를 둘러싼 사회는 침묵하거나 동조합니다. 영화의 중반 이후, 검찰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지만, 그 대상은 실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버려도 되는 인물들’입니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진짜 악인은 누군가,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얼마나 쉽게 타협하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2. 인간관계와 권력 줄 서기의 본질

‘범죄와의 전쟁’이 단순히 범죄물이나 조직영화로 그치지 않고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다루는 인물들의 ‘관계’입니다. 주인공 최익현은 사회적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와 말솜씨 하나로 폭력 조직과 정치권, 검찰까지 연결해 나갑니다. 그는 몸으로 싸우기보다는 머리로, 그리고 입으로 싸우는 인물입니다. 그가 조직폭력의 핵심 인물인 최형배와 인연을 맺고, 그 관계를 끌어가며 자신의 위치를 끌어올리는 과정은 한국 사회 특유의 ‘줄 서기 문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익현이 술자리에서 검사를 만나 자신의 인맥을 과시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누구랑 술을 마셨는지 알아요?’라는 익현의 대사는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입니다. 즉, 능력보다는 인맥이, 실력보다는 줄이 더 중요했던 당시 사회의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줄을 타는 방법은 겸손이나 성실이 아닌, 뻔뻔함과 아부, 그리고 끈질긴 집착이었습니다. 최형배와의 관계 또한 단순한 의리나 동지애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익현은 언제든 형배를 이용하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고, 형배 역시 그를 하나의 ‘수단’으로만 바라봅니다. 서로를 믿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믿지 않고, 서로를 이용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연기를 합니다. 이러한 관계의 본질은 정치권과 폭력조직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며, 감독은 이를 블랙코미디의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그러면서도 인물들을 지나치게 희화화하지 않고, 그들의 감정과 욕망을 현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이 쉽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듭니다. 최익현의 가족들도 이 영화의 중요한 축입니다. 그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권력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의 가족은 점점 그에게서 멀어지고, 그의 행위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가 되어갑니다. 이는 권력과 돈을 좇는 것이 개인의 삶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며, 결국 그의 ‘성공’은 가족이라는 기반을 잃고 혼자 남겨지는 고립감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범죄와의 전쟁’은 인물 간의 관계 속에서 권력과 생존의 본질을 통찰합니다. 그 관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으며, 결국 신뢰보다는 이해타산이 지배하는 구조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현실은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사회 곳곳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진실이기도 합니다.

3.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울이 된 범죄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단지 범죄 조직과의 전쟁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 속 가장 혼란스럽고 모순적이었던 시기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1990년대 초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시행된 대대적인 폭력 조직 소탕 작전은, 당시 언론과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일시적인 성과를 거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사건이 단순한 치안 강화를 위한 정책이 아니었음을 암시합니다. 이는 권력 내부의 정리 작업이자, 불필요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수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시기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인물이 바로 최익현입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전환되자 가장 먼저 타깃이 되고, 자신을 이용하던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이렇게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나쁜 놈’에서 하루아침에 ‘필요 없는 인물’로 전락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보이는 사회의 냉정함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권력은 필요할 때만 손을 내밀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그 손을 거둬들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가 이 영화에 짙게 녹아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검찰이라는 조직의 이면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기관이 오히려 권력과 손을 잡고 움직이며, 필요에 따라 사건을 은폐하거나 확대시키는 모습은 당시 실제로 벌어진 일들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단지 허구가 아닌,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실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 익현이 결국 검찰에 의해 기소되고, 법정에 서는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한 시대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감독 윤종빈은 이처럼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지나치게 무겁거나 암울하지 않은 연출 방식을 선택합니다. 코미디와 비극을 넘나드는 서사는 관객이 피로감 없이 영화를 따라가게 하며, 동시에 장면 장면에 담긴 풍자의 힘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웃음이 터지는 순간조차,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씁쓸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됩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시대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들의 욕망, 배신, 성공과 몰락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비슷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제목 그대로 범죄와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이지만, 진짜 싸움은 눈에 보이는 조직과의 전쟁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생존 게임이었습니다. 조직도, 권력도, 법도 결국 사람과 관계를 통해 움직이는 것이며, 그 안에서 정의와 도덕은 종종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이 영화는 그런 현실을 담담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어떤 줄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물음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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