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영국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재창조한 심리 서스펜스 로맨스 영화입니다. 귀족 여성과 하녀, 그리고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속임수와 욕망, 배신과 연대의 이야기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계급과 젠더, 권력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세 파트로 구성된 영화는 관객에게 반복되는 시점과 반전을 통해 진실을 재구성하게 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보던 세계의 허상을 깨뜨립니다. 미장센의 완성도,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 시각적 아름다움까지 더해진 ‘아가씨’는 단순한 로맨스나 범죄극을 넘어, 인간 본성과 자유의지를 질문하는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본문에서는 영화 ‘아가씨’가 다룬 권력관계, 서사의 구조, 그리고 감정의 해방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의 관계 속에 숨겨진 권력의 얼굴
‘아가씨’는 첫 시선에서 ‘계급’이라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배경 속에서 귀족과 하녀, 일본인과 조선인,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권력의 상징입니다. 숙희는 생계형 좀도둑 출신의 하녀이고, 히데코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일본 귀족입니다. 이 둘이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신분 차이를 넘어, 감정과 욕망, 통제와 저항의 이중 구조를 형성하게 됩니다. 숙희는 처음엔 히데코를 속이기 위해 접근합니다. 백작이라는 사기꾼과 함께 계획한 사기극의 일환으로, 히데코를 유산 상속 후 정신병원에 보내는 계획에 따라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히데코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감정이 생기게 되고, 계획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하녀가 주인을 속이는 관계였지만, 감정이 생기면서 주종의 관계는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명확하게 권력관계를 보여줍니다. 히데코는 겉으로는 순종적이고 연약한 귀족 여성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삶은 삼촌의 도서관에서 강제로 낭독을 하며 성적 대상화되는 끔찍한 환경 속에 놓여 있습니다. 이 모든 권력 구조는 남성 중심의 지배 체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히데코는 그 구조 안에서 억눌려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억압적 구조를 감정의 연대로 전복시키려 합니다.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는 단순한 동성애적 관계를 넘어, 권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들의 연대이자 반란의 의미를 지닙니다. 처음에는 속이려 했던 숙희가 오히려 히데코에게 감정적으로 종속되기도 하고, 히데코는 숙희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향한 욕망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함께 탈출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장면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권력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서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가씨’는 처음엔 전형적인 하녀-주인 관계처럼 보이지만, 점차 그 경계를 허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짜 감정, 그리고 진정한 자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대적 배경이나 신분제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권력과 감정의 문제로 확장되며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2. 3부 구성의 반전 서사, 시점을 바꾸면 진실이 다르게 보인다
‘아가씨’는 독특한 서사 구조를 통해 관객의 인식을 지속적으로 흔들어 놓습니다. 영화는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으며, 각 파트는 다른 인물의 시점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숙희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녀가 히데코를 속이기 위해 하녀로 들어가게 된 경위와 그 안에서 생긴 감정을 중심으로 보여줍니다. 이 시점에서는 히데코가 단순히 순진한 귀족 여성으로 보이게끔 연출됩니다. 그러나 두 번째 파트에서는 히데코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면서, 관객은 전혀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히데코는 어린 시절부터 외삼촌에게 학대당하며 음란한 소설을 낭독해야 했고, 그녀의 삶은 철저히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숙희를 만난 것도 처음이 아니며, 백작과 함께 계획을 세워 숙희를 이용하려 했던 인물은 바로 히데코였습니다. 이 반전은 관객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으며,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이야기의 진실성 자체를 다시 의심하게 만듭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이 두 여성의 시선이 함께 교차되며, 진짜 이야기가 완성됩니다. 히데코는 처음에 숙희를 속이려 했지만, 그녀와의 감정이 진심으로 발전하면서 기존의 계획을 버리고 숙희와 함께 도망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의 탈출 과정은 한 편의 서스펜스를 방불케 하며, 긴장감과 감정선이 절묘하게 교차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구조를 통해 ‘진실’이란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히 반전을 위한 장치가 아닙니다. 이는 감정의 진정성, 욕망의 방향성, 그리고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보다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서술 방식입니다. 관객은 각 인물의 시점을 통해 감정 이입의 방향을 바꾸게 되고, 이로 인해 이야기의 결말은 더욱 강한 울림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아가씨’는 이야기의 반복과 뒤틀림을 통해 권력과 감정, 배신과 연대의 본질에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적 장치는 영화가 단순한 멜로, 범죄물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깊이를 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3. 감정의 해방과 여성의 연대, 새로운 삶의 가능성
‘아가씨’는 궁극적으로 억압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해방시키고, 그 감정으로부터 연대를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숙희와 히데코는 각자의 위치에서 억압과 통제를 경험해 온 인물입니다. 숙희는 가난과 생존의 문제로 인해 범죄 집단에 가담했고, 히데코는 남성 중심의 음란문학 산업 속에서 인격을 부정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엔 서로를 속이고 이용하려는 관계였지만, 점차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며 연대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감정의 진실’입니다. 숙희는 처음에는 히데코를 속이는 것이 임무였지만, 그녀의 내면을 알게 되면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히데코 역시 숙희를 처음에는 도구로 이용하려 했지만, 그녀의 순수함과 진심에 감화되어 점점 기존의 삶을 부정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이 감정은 단순한 연애 감정을 넘어선 것으로, 삶을 변화시키고 억압된 구조를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특히 히데코가 낭독실에서 숙희와 함께 외삼촌을 속이기 위해 연기를 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그 공간은 히데코의 억압과 고통이 응축된 곳이지만, 숙희와 함께 다시 들어가는 순간은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극복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결국 그 공간을 부수고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억압을 상징적으로 해체하는 장면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여성이 함께 배를 타고 멀리 떠나는 장면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누구의 명령도, 어떤 제도도 없는 곳에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며,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이자 해방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를 통해 감정과 성, 권력과 자유, 그리고 인간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여성’이며, 그 여성들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 구조는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동성애, 에로티즘, 범죄의 결합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통해 억압에 저항하고 삶을 선택하는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아가씨’는 복잡한 서사와 감각적인 연출, 탁월한 연기를 통해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감정적 깊이를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숙희와 히데코는 처음엔 타인에게 조종당하는 인물이었지만, 점차 자신들의 욕망과 감정을 마주하며 삶을 선택해 나갑니다. 이 영화는 결국 인간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 중심에 ‘감정’이라는 순수한 동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줍니다. 우리는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지금의 감정은 진짜인가? ‘아가씨’는 그런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