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미국 NASA를 배경으로,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 사회적 장벽을 넘어 우주 개발의 숨은 영웅으로 활약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이중의 벽을 돌파해 낸 그들의 지성과 용기는 오늘날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1. 냉전과 NASA, 구조적 차별의 이면에 숨겨진 존재들
1960년대 미국은 과학기술과 이념 경쟁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냉전시대였습니다. 특히 미국과 소련 간의 ‘우주 개발 경쟁(Space Race)’은 단순한 기술의 우위를 넘어 국가의 자존심을 건 대결로 확대되었고,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긴장감과 강박이 자리 잡게 됩니다. 이처럼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된 우주개발의 중심에는 NASA가 있었고, 그 내부는 최첨단 과학의 상징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NASA 내부에서도 여전히 인종과 성별에 따른 차별이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수학적 계산 업무를 담당하던 흑인 여성들은 ‘컴퓨터’라 불리며 한 공간에 모여 각종 데이터를 계산하는 데 투입되었지만, 업무의 중요성에 비해 대우는 매우 열악했습니다. 이들은 복사기 하나조차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커피포트는 백인 직원과 공유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화장실조차 수백 미터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구역’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영화는 세 명의 인물, 즉 카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이들은 모두 고등 교육을 받았음에도 단지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무에 접근하는 데 수많은 장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력을 입증하며 끝내 NASA의 역사적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단지 개인의 성장 드라마로만 해석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개인의 의지와 역량이 사회적 제도와 구조적 장벽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는지를 조명합니다. 카서린이 궤도 계산을 통해 우주 비행 성공에 기여하는 과정, 도로시가 최초로 IBM 기계를 분석하여 프로그래밍을 독학하는 장면, 메리가 법정에서 직접 발언해 공학 수업 수강 권리를 쟁취하는 에피소드는 단순한 드라마틱한 장치가 아닌, 현실에 뿌리내린 사실이기에 더욱 큰 울림을 줍니다.
2. 여성 서사의 중심에 선 세 인물의 용기와 실천
이 영화의 힘은 단지 시대를 재현하거나 차별을 고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인물 중심 서사’의 구성입니다. 카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이 세 명의 여성은 단순한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실제 존재했던 인물들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장벽을 넘었습니다. 카서린 존슨은 NASA에서 궤도 계산이라는 핵심 업무를 맡게 된 천재적인 수학자였습니다. 그녀의 수학적 능력은 남성 중심 조직에서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탁월했으며, 실제로 존 글렌의 우주 궤도 비행 전에는 그녀가 손으로 직접 계산한 값을 요청했을 만큼 신뢰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은 불편함과 무시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단지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의자에 앉을 수 없고, 이름조차 명단에 오르지 못하며, 문을 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실력을 증명해 냈습니다. 도로시 본은 당시 컴퓨터 시스템이 도입되기 직전의 과도기에 있던 NASA에서, IBM이라는 새로운 기계에 주목합니다. 아무도 다루지 못하던 이 시스템을 스스로 매뉴얼을 구해 독학하고, 다른 흑인 여성들에게도 가르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낸 그녀의 행보는 ‘리더십’과 ‘전환 대응력’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메리 잭슨은 공학자로 일하기 위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야간 학교 수업이 백인 전용임을 알게 되자, 직접 법원에 출석하여 발언을 통해 허가를 받아냅니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인내와 논리로 판사를 설득했고, 끝내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항공 엔지니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됩니다.
3. 히든 피겨스의 상징성과 오늘날의 울림
《히든 피겨스》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회고적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의 사회에서 모든 능력 있는 이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능력을 펼치기 전에 출입문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영화 속 ‘숫자’는 단순한 계산 수단이 아닙니다. 그 숫자는 구조를 뚫고 나가는 힘이자, 벽을 허무는 도구였습니다. 카서린 존슨이 종이에 계산한 궤도 하나가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일의 핵심이 되었고, 도로시 본이 남몰래 읽은 매뉴얼 한 권이 여성 집단 전체를 실업 위기에서 구해낸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리 잭슨의 설득 하나는 이후 수많은 여성 기술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판례’로 작용했죠. 영화는 감동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한 현실 묘사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 질문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이 점이 《히든 피겨스》를 단순한 여성 영화, 인권 영화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곱씹어야 할 문제의식을 던지는 작품으로 만들어줍니다. 과거의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지금 우리 사회의 틈과 차별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