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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오브 헤븐 발리안의 여정, 예루살렘의 풍경, 가능성에 대한 질문

by 카이로명장 2025.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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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12세기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신념과 정의, 종교와 인간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성장과 선택을 그린 대서사시입니다. 주인공 발리안이 이뤄낸 내면의 변화와 예루살렘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둘러싼 정치적, 종교적 긴장은 역사적 사실과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함께 담아냅니다. 장대한 전투 장면과 정교한 미장센은 물론,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대사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단순한 전쟁 영화 이상의 깊은 울림을 느끼게 합니다. 신념이 무엇인지,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작품입니다.

 

킹덤 오브 헤븐 발리안의 여정, 예루살렘의 풍경, 가능성에 대한 질문

 

1부: 잿더미에서 피어난 신념의 씨앗 – 발리안의 여정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시작부터 어두운 정서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 중세 유럽의 음울한 마을, 아내의 자살로 인해 신앙에 실망하고 살아가는 대장장이 발리안은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은 채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앞에 자신이 몰랐던 출생의 진실을 지닌 아버지, 고드프리 경이 나타나면서 인생은 급격히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발리안은 고드프리를 따라 성지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신념을 찾아가는 대장정으로 펼쳐집니다. 발리안이 처음 예루살렘에 발을 디딜 때, 그는 결코 영웅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책감과 상실,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의미의 용기를 깨닫고, 신의 뜻보다는 인간의 선함을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차 다른 인물로 변모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다루며, 발리안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군인이 아닌 ‘신념을 지닌 지도자’로 자리매김시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발리안의 신념을 종교적 맹신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중세라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뜻보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우선시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고드프리의 유언처럼 “착한 사람이면 신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믿음 아래, 그는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해 나갑니다. 예루살렘 도착 이후 발리안은 새로운 현실과 마주합니다. 그곳은 신성한 도시이자,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격전의 중심지입니다. 발리안은 곧바로 성전기사단과 타 종교 간의 갈등, 부패한 지도층, 전쟁을 원하는 자들과 평화를 모색하는 이들 사이의 균열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으며 그 속에서 현실적이고 도덕적인 선택을 이어갑니다. 전쟁을 앞두고 예루살렘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끝내는 살라딘과의 협상을 이끌어내는 그의 모습은 지도자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줍니다. 이는 단지 전략적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인도적 선택이었습니다. 발리안은 결국 전쟁이라는 극단적 선택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인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의 여정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시작한 한 인간이 어떻게 신념을 세우고, 그것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자신을 바쳐나가는 이야기입니다. 《킹덤 오브 헤븐》은 이처럼 무거운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진정한 용기와 정의란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2부: 역사와 허구의 경계에서, 진실을 그리는 예루살렘의 풍경

《킹덤 오브 헤븐》은 역사 영화로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영화는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시대가 지닌 갈등의 본질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예루살렘’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단지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욕망이 충돌하는 역사적 상징으로서 기능합니다. 영화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공존하고 있는 예루살렘의 복잡한 구조를 상당히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어느 한쪽을 악으로, 다른 한쪽을 선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기독교 진영 내에도 권력욕에 찌든 인물이 있는가 하면, 진정한 평화를 원하고 약자를 보호하려는 지도자도 존재합니다. 이슬람 진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살라딘은 전쟁 중에도 예의를 지키고, 예루살렘 점령 후에도 무분별한 학살이 아닌 평화로운 인수를 지향하는 리더로 묘사됩니다. 이와 같은 균형 잡힌 시선은 관객에게 역사적 갈등을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않게끔 도와줍니다. 전쟁은 항상 누군가의 정의로 포장되지만, 그 속에서 고통받는 건 대개 일반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자주 상기시킵니다. 발리안이 예루살렘의 성을 지키려는 이유 또한 종교적인 명분이 아니라,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영화는 전쟁의 스펙터클을 강렬하게 묘사하면서도, 그 이면의 비극성을 놓치지 않습니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예루살렘 성을 향해 진군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하지만, 동시에 “이 전쟁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회의도 함께 전달됩니다. 전투 장면의 사실성과 긴장감은 물론, 전쟁을 둘러싼 전략과 심리전도 정교하게 다뤄지며 관객을 몰입하게 합니다. 중요한 점은, 영화가 보여주는 갈등의 해소 방식입니다. 마지막 협상 장면에서 발리안은 살라딘과 마주하며, "도시는 돌덩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안에는 사람의 생명이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항복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는 무의미한 전투보다는 생명을 지키는 쪽을 택한 매우 이례적이고 인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살라딘 또한 이에 동의하며, 종교적 신념을 넘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인정해 주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전개는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종교적 갈등과 전쟁의 참상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가 단지 ‘과거’를 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의 매개체임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3부: 인간성과 신념의 충돌, 그리고 평화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

《킹덤 오브 헤븐》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한 전쟁 블록버스터를 넘어서, 신념과 인간성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치열하게 탐구한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는 종교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도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진정한 평화는 어디서 시작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영화의 중심 인물 발리안은 끊임없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는 한때는 죄를 짓고 떠돌던 존재였지만, 고드프리의 죽음을 계기로 신념을 세우고, 예루살렘의 방어자로서 시민들을 지키는 길을 택합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영웅주의가 아닙니다. 발리안은 늘 현실적인 판단과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며, 어떤 순간에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또한 영화는 절대적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신념을 강조합니다. 예루살렘을 장악하려는 종교 지도자들과 무기력한 귀족들 사이에서도, 발리안은 끝까지 자신의 길을 지켜나갑니다. 그는 무력보다 대화와 설득을 중시하고, 갈등보다는 공존을 택합니다. 이는 단지 영화 속 캐릭터의 선택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에게 던지는 윤리적 질문으로 작용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부분은 살라딘과의 관계입니다. 두 인물은 서로 다른 종교, 다른 진영에 속해 있지만,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살라딘은 단지 적으로서 묘사되지 않으며, 발리안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을 중요시하고, 전쟁보다 평화를 택할 줄 아는 지혜로운 지도자로 그려집니다. 이 둘의 교차는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평화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발리안은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삶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예루살렘”이라는 단어를 되새기게 하며 마무리됩니다. 이 여운은 관객에게 단순한 역사극 이상의 감정과 질문을 남깁니다. 과연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으며, 어떤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신의 뜻’은 정말로 생명을 위한 것인가? 《킹덤 오브 헤븐》은 이처럼 보편적인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영화입니다.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끝내는 평화와 존엄이라는 인류 공통의 가치를 강조하며 마무리 짓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과거를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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